문을 열었을 때, 집 안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아니, 단지 조용한 게 아니었다. 고요함이라는 말조차 모자란,
무언가가 멈춰 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초침이 제 할일을 잊어버린것 같은,
바람조차, 이 집 안에서는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그 현관에 멈춰섰다.
그 언젠가 상상했던 것처럼 가스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건, 애초에 맡을 수 없는 냄새였다.
나는 매일 아침, 아주 조심스럽게 그 일을 준비해왔으니까
부엌 유리창엔 동그란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그 구멍을 중심으로 투명한 테이프가 안쪽과 바깥쪽에
여러 겹, 마치 겹쳐진 상처처럼 덧대어 있었다.
바깥의 LPG 호스는 그 구멍을 통해 실내로 이어졌고,
그 연결부는 내 손으로 매일같이 누르고, 덧대며 만든 구조였다.
나는 늘 등교 전에 그것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했다.
그 호스를 양손으로 쥐고 아래를 향해 열심히 비비며, 엄마에게 테이프 소리가 들릴까 마음을 조리면서 말이다.
바깥쪽 테이프는 새지 않게 꾹 눌렀고, 안쪽 틈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조심스럽게 벌려 두었다.
그렇다고 호스를 건들일때 딱히 무언가가 찢어지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같이, 아주 조금씩 호스는 얇아져갔고 테이프는 피곤한 얼굴처럼 점점 늘어졌다.
오늘 아침, 나는 평상시와 같이 그 위에 테이프를 한 번 더 눌러 붙이며, 모든 창문을 닫고,
엄마 방 문을 활짝 열어두고, 문 앞에 소주병을 하나 세워뒀다.
엄마는 차가운 소주만 마셨다.
그래서 나는 그 병을 방 안, 햇빛이 드는 문 앞에 일부러 두었다.
그건 문을 고정시키기 위한 것도 맞았고,
내가 엄마의 기호를 조용히 무시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엄마는 그 병을 절대 마시지 않을것이고,
그 확신이, 이상하리만치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지금도 병은 그 자리에 있었다.
엄마는 이불 위에 누워 있었고, 작은 한기가 방 안을 맴돌았다.
나는 그 광경을 한참 바라보다 문득, 손끝이 차가운 걸 느꼈다.
드디어, 그 모든 고요함을 이해했다.
1장.타인
사진관 앞에 택시 한 대가 멈췄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턱을 들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빛은 낮게 깔렸고, 거리엔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의 숨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엄마의 장례가 끝난 지 한 달.
그 남자는 모든 일이 다 끝난 뒤에야, 마치 출장이라도 마친 듯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문 안쪽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결혼식 사진 한 장. 흑백 속에서 웃고 있는 얼굴 그 옆에 엄마가 있었고,
그게 내가 아빠에 대한 정보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
그 낯선 정보가 문을 열고 현실로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들어선 그는 나와 마주한 순간,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방 안으로 바깥 공기가 밀려들듯,
우리 사이에 묵직한 정적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번 해 사진을 받지 못해서, 이렇게 컸을 줄은 몰랐네.”
그가 내 얼굴을 보며 처음 한 말이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작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거울 속 얼굴도, 사진 속 얼굴도 그랬다.
비슷한 머리 길이, 비슷한 분위기의 옷,
같은 위치에 서서 항상 행복해 보이기 위한 미소를 지었었다.
그 말에서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사진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것
그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이방인처럼 구석구석을 훑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이곳이 처음인 듯했고, 어느새 손으로 코를 가볍게 쓸어올렸다.
먼지를 막으려는 무의식적인 행동 같았다.
“먼지가 많네. 여기서 지냈던 거니?”
그가 물었다.
“네. 엄마 돌아가시기 전부터요.”
나는 최대한 감정을 눌러 대답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침묵은 사진관 안에 묻어두었던 공기처럼 무거웠고, 나는 그 틈을 채우고 싶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내 손에 잠시 멈췄다.
나는 무심결에 반지를 만지고 있었다.
엄마가 늘 끼고 있던, 도금이 벗겨지고 여기저기 긁힌 흔적 투성이의 반지.
누가 봐도 값어치라곤 남지 않은 물건이었지만, 엄마는 그것을 손에서 빼는 일이 없었다.
“그 반지… 아직 있었구나.”
그는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물건을 우연히 발견한 듯,
낯선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눈을 내렸다.
그의 손가락에도 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놀랄 만큼 새것 같았다.
빛을 머금은 채 반듯하게 빛나는 금속
금방이라도 케이스에서 꺼낸 것처럼 깨끗했다.
나는 그 반지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 반지엔,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엄마의 시간은 고스란히 벗겨지고 깎여 나갔는데,
그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단 한 번도 닳지 않은 시간이
그걸 보고 있으니, 이 사람은 단 한 번도 이 곳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분명해졌다.
“그럼 난 먼저 나가볼게.”
그가 말했다.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가시는 거예요?”
“그래야지. 내일 일정도 있고..”
그는 말을 흐렸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어차피 묵을 곳도 예약해놨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더 이상 나를 보지 않았다.
그저 느릿하게 몸을 돌렸고,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문 너머로 지켜봤다.
그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급하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자,
사진관 안의 온기가 사라진 걸 느꼈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엄마의 서랍을 열었다.
그 곳에는 잡동사니들과 그중에 제일 귀해보이는 상자가 있었다.
그 상자를 열면 봉투마다 한 해의 날짜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꺼내 사진을 한 장 꺼냈다.
가운데에 선 나, 그 옆에 팔을 얹은 엄마.
그리고 그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 내 눈앞에 섰던 사람은 이 사진 속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그는 늘 우리의 시선에 닿지 않는 그 바깥에 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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